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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시골아빠입니다. 

     

    전 박진영이라는 가수를 참 좋아했습니다.

    노래와 춤 모든게 시대를 유행에 선두주자였으며

    기분 좋은 신나는 댄스 음악들이었습니다. 

     

    자유분방하고 공부도 잘하며

    JYP엔터테이먼트 사업까지 

     

    모든 방면에서 특출난 두각을 드러내는

    가수겸 사업가이죠!

     

    박진영 에세이 -무엇을 위해 살죠?

    박진영 사장님이 에세이를 냈다고 해서

    얼른 사서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자신의 유년기와

    사업가로서의 성공에 대한 내용이

    1/3정도이고 나머지 2/3는

    성경책에 관한 내용들이었습니다.

     

    전 현재 기독교 신앙에 몸을 담고 있지만

     

    종교에 굉장히 자유롭고 너그로운 편이라

    끝까지 읽을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물에는 正과 邪가 있듯이 

     

    같은 기독교 신앙을

    가졌지만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에

    책의 뒷 내용이 껄끄러울수도 있습니다. 

     

    블로그를 보시는 분들도 이점 참고하여

     타 종교나 무교, 다른 신념을 가지신

    기독교 분들은 읽기 거북하시면

    스킵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난 어려서부터 그때그때 쫓는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민하느라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가수를 하면서 탄 상들이나 트로피들도 반 이상 잃어버렸다. 이미 탄 상보다는 앞으로 탈 상들에 관심이 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진영이라는 가수는 어렸을때 부터 굉장히 진취적인 분이라는 걸 알수있습니다. 성공한 삶의 과정속에서도 과거보다는 미래를 향한  삶을 사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유치원 때 말썽을 부려 유치원을 그만두었지만, 내 인생을 바꾸게 될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초등학교 5학년이 될 쯤 체르니 50번까지 치게 되었는데, 이것이 후에 내가 음악을 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아버지는 거친 사람과는 먼 분이셨으며 어머니처럼 자유분방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권위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분이셨다. 그래서 난 쉰이 다 된 지금까지도 아버지를 '아빠','엄마'라고 부른다. 이런 환경 때문에 난 유난히 권위의식에 대해 알레르기를 갖게 된다.

     

    어렸을때의 경험이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때 결정적인 역할을 할수도 있고 부모의 생활습관이 아이의 성격을 형성하는 것을 볼수있습니다. 박진영의 음악과 패션감각은 어렸을 적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수있었네요!

     

    우리 가족은 미국에 가서 2년 반 정도 살게 되었다. 미국에 간지 얼마 안 됐을때(1979년) 한 멋진 가수가 반짝이는 옷과 양말을 흔들며 춤추는 것을 본적이다. Michael Jackson의 <Rock with you>의 뮤직 비디오였는데 나는 거기에 매료되었다.

     

    당시 한국엔 주한미군을 위한 TV채널 1개, 라디오 채널 1개가 있었는데, 난 밤낮 그걸 붙들고 꾸준히 그 음악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다. 그게 15년 후에 박진영이란 가수, JYP라는 회사의 밑거름이 되었다.

     

    전 박지영이라는 가수가 '날 떠나지마' 라는 노래를 부를때 마이클 잭슨을 많이 연상했는데 지금 이 글을 통해 격한 공감을 했습니다. 너무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친구중에는 여러 중학교에서 퇴학을 당해 나보다 나이가 2살이 많은 아이도 있었지만 오히려 집에 데려올 때마다 맛있는 음식과 간식을 해주셨다. 후에 왜 그랬냐고 여쭤봤더니 어머니도 내 친구들이 무서웠지만, 나를 끝까지 믿어주고 싶었다고 하셨다.

     

    내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바로 강 건너 잠실로의 이사이다.

    어느날, 전에 우리 친구들과 싸우다 다친 아이들이 집 아파트 현관 밑에 숨어 있다 나를 덮쳤다.

    로비에서 큰 싸움이 일어났고 아파트 주민들도 모두 놀랐다. 이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나는 이전의 생활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이 책 내용을 보면서 아이들의 훈육에 대한 지혜도 터특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힘든 시절을 보내는 아이를 위해 이사를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며 질이 나쁜 친구라도 다정하게 대해주면 철이 들었을때 부모에게 감사해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학생회장에 당선된 후, 공약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가수를 섭외할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내 말에 귀기울여주시는 아버지에게 정황을 설명하고 돈을 빌릴 수 있었다. 빌린 돈을 들고 나는 무작정 당시 최고의 가수들이 소속되어 있던 동아 기획을 찾아갔다.

    나는 학교 주변의 학원들을 찾아가 섭외된 가수들의 명단을 보여주며 축제포스터에 학원 광고를 실어주겠다고 제안 했다. 학원들이 제안을 받아들여 다행히 나는 아버지께 빌린 돈을 갚았고, 축제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지금 저에게 이러한 방법이 있으니 하라고 해도 못할일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박진영은 해냈군요!

    역시 사람은 뿌리부터가 다르다는 것이 새삼 느껴집니다.

     

    초대가수 3명이 무대에 오르기 직전, 오프닝은 나의 무대였다. 나는 두 곡을 연달아 불렀는데 노래가 끝날  때 마다 들리던 박수 소리가 너무 짜릿했다. 그게 내가 가수로서 처음 무대에 서본 경험이었다.

     

     

     

    1학년이 끝나갈 때쯤, 나는 정말 흥분되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내가 즐겨 다니던 클럽의 DJ였던 김창환 씨가 혹시 가수를 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클럽에서 내가 춤추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창환이 형은 제작자로 변모하기 위해 신승훈 씨의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듭니다. 박진영씨의 주변에는 전부 유명한 사람들이 함께 했네요! 인맥도 능력이라고 하던데 박진영이라는 가수는 노력과 능력 그리고 인맥 이 3개를 모두 갖추었습니다.

     

    2년동안 가수가 되기 위해 여러 기획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 실패하였고, 김창환형은 김건모, 노이즈까지 성공시키면서 최고의 기획자가 되었다. 형은 강원래 형, 박미경 누나와 3인조 댄스그룹을 제안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3인조 댄스그룹으로 나왔다면 아마 그룹으로 성공할 수는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크지는 못했을거라고 생각되네요!

     

    그러다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준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그 회사 가수들의 음악 작업을 많이 하던 작곡가 김형석씨를 만난 것이다. 형이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악기들을 하나씩 연주해 쌓아가는 모습을 보는데 난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형석이 형을 2년 넘게 따라다녔다. 잔심부름을 자처하고 운전기사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형석이 형의 도움으로 작곡 실력을 쌓아가며 나는 <날 떠나지마>를 비롯해 많은 곡들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음악에는 문외한이지만 제가 알고있는 당대 최고의 작곡가와 가수들이 이 책에서 신인으로 나오니 신기하기만 합니다. 또한 박진영이 대학생때 그들을 알고 있다는 것도 놀랍기만 합니다.

     

     

     

    내 소속사가 가수 제작 경험이 없는 터라 앨범 발매 후 1년이 지나도록 나는 방송에 출연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고, 이렇게 내 가수의 길은 막을 내리나 싶었다. 한 광고에 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것이다. 센스민트라는 껌 광고였는데 모델은 배우 정우성씨였다. 정우성 씨도 아직 신인이어서 아무도 그가 누군지 모를 때였다. 광고 하단에 <날 떠나지마>라는 자막이 뜨면서 내 노래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껌 광고를 찾아볼수도 없지만 당시에 껌광고는 굉장했었습니다. 껌을 많이 씹기도 하고, 보도에 껌이 붙어서 치우는 공익서 TV영상도 많이 방영되었죠. 칼 같은걸로 보도를 끓어서 없애는 영상이 아직도 제 머릿속에는 남아있습니다.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출연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 PD는나를 보더니, 연세대 학생이라는 점을 부가시켜야 성공하겠다며 첫 방송을 학교에 가서 찍자고 했다.

    토토즐 측에서 나에게 톰 크루즈가 내한한다며 나에게 그와의 인터뷰를 맡겼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영어를 잘하는 연예인들은 많지 않았고, 거기에 해외 톱스타를 웃기는 통역은 흔치 않았기에 대중들은 나를 더 신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제가 박진영이라는 가수를 처음 알게 된 프로가 토토즐이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얼굴만 보고 평가하며 과연 뜰까?라고 생각했었으며 신승훈과 김건모의 노래 스타일에 푹빠져 있어 <날 떠나지마>같은 경쾌한 댄스음악은 저와 맞지 않았죠... 하지만 전 지금도 박진영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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